SEOUL NATIONAL UNIVERSITY
검색창 닫기
Translation
[2018 하계 연합 · 연계전공 해외현장교육_워싱턴D.C.] 신예리(국어국문학과)
  • Category해외현장학습 소감문
  • Writer인문대학
  • Date2018-12-18 18:31:17
  • Pageview281

별천지 뒤의 어둠: 워싱턴 해외현장교육, 그 짤막한 소회

 

 

최초의 신소설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인직의 『혈의 누』에서 주인공 옥련이는 일본에서 공부를 하던 와중, 개화기 지식인이자 그녀의 미래 남편이 될 구완서를 만난다. 옥련이는 그의 도움으로 미국 화성돈(華盛頓)으로 건너가서 신문물을 접하고 새로운 학문에 정진하며 조선을 ‘구제’하기 위한 선구자가 되기로 결말부에 이르러 결심한다. 작품에는 화성돈을 묘사하는 이러한 구절이 등장하기도 한다. 

 

조선서 낮이 되면 미국에는 밤이 되고 미국에서 밤이 되면 조선서는 낮이 되어 주야가 상반되는 별천지라. 산도 설고 물도 설고 사람도 처음 보는 인물이라. 키 크고 코 높고 노랑머리 흰 살빛에, 그 사람들이 도덕심이 배가 툭 처지도록 들었더라도 옥련의 눈에는 무섭게만 보인다. 

 

 

조선인 소녀의 눈에 너무나도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묘사되는 ‘화성돈’이라는 도시는 바로 미국의 현 수도인 워싱턴의 조선식 표기이다. 그리고 워싱턴은 2018년 8월 마지막 주, 졸업 학기의 개강을 직전에 두고 내가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1906년의 옥련이의 ‘별천지’와도 같았던 화성돈은 2018년의 나에게는 조금 다른 면모의 워싱턴으로 다가왔다. 풍부한 경험을 통해서 나에게 꽤나 복합적인 감정을 지니게 한 이번 여름의 워싱턴 현장 교육에 대한 소회를 본고에 간단하게나마 적어보려고 한다. 

중학생 때 캐나다에서 잠시 거주했던 시절, 몇 번 여행으로 짧게 갔다 온 이후에 미주 지역을 방문한 지가 아주 오래되었기에 졸업 전에 한 번쯤 다녀와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들었던 즈음이었다. 특히나 워싱턴은 미국 내에서도 보다 특수한 도시라는 느낌이 강했다.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법학이나 부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정치와 같은 분야와 관련된 기구들이 몰려있는 미국의 행정적 중심이자 수도라는 점에서 꼭 방문해보고 싶었는데 이번 CORE 사업단의 해외현장교육의 커리큘럼은 이러한 나의 열망과 아주 잘 맞아 떨어졌다. 이에 공고를 보자마자 지원서를 작성했고, 운 좋게 합격하여 일주일 간 도시를 단순히 둘러보는, 즉 sightseeing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여러 기구를 방문, visiting하고 심지어 현장 인사들과 직접 대화할 귀중한 기회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백악관, 국회의사당, 국회 도서관, CSIS, World Bank 등 각종 공식적인 기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미소니언의 박물관에 방문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이 기구들, 아니 이 도시들, 혹은 더 나아가서 이 나라가 이곳을 찾아온 자국민들과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는 하루하루 더욱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인권’개념을 기초로 하여 모두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국가’이다”라는 일반론적이지만 상당히 강렬한 메시지가 국회의 홍보 영상에서부터 박물관의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 전시실에 적힌 문구까지 매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특히나 소위 글로벌 시대에 미국은 세계 최대의 다인종 국가로서 다원주의를 표방하며 ‘diversity into one nation’을 명백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United diversity, 그것이 미국이라는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이라는 것은 도시에 발을 딛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아주 확실히 와 닿았다. 가령 우리가 티켓팅을 해야 할 정도로 입장이 상당히 치열했던, 새로이 건축된 African-American

Museum의 세련된 위용이 워싱턴을 상징하는 monument의 건너편에서 빛나는 모습 그 자체는 21세기의 미국이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융합, 조화, 다양성의 통일 등의 메시지는 확실했고 강렬했으며, 거듭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그들의 메시지가 나에게 ‘진실하게’ 느껴졌는가? 미국은 정말 이러한 평등, 자유, 인권, 다원주의와 같은 누구도 반박 불가한 ‘옳고 선한’ 가치의 수호자가 맞는가? 이에 대한 내 입장은 애매하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이번 견학 내내 위선의 향기를 이 도시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공적으로, 대외적으로 그들이 내세우는 메시지는 분명하나 막상 철저한 외부인으로서 내가 짧은 시간동안 느낀 바로는, 실제적으로 이러한 메시지가 완전히 실현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공공 기관에 방문하면 참으로 다양한 인종들이 어우러져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거나, 방문객으로서 동일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하였다. 가령 국회의사당 안에서는 미국 중산층 노부부나, 서울에서 온 대학생인 우리들이나, 가나에서 힘들게 이곳을 찾아온 10대 소녀나 다 같은 출입증을 받은 동일한 방문객의 입장이다. 여기서는 인종, 연령, 출신 국가 등의 여타 맥락은 모두 배제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나와서 조금만 더 걸어 CVS나, 월마트에 들어가 보자. 놀랍도록 모든 캐셔들의 인종은 동일하다. 흑인이다. 워싱턴의 인구 중 51% 정도가 흑인이라는 설명을 가이드 분으로부터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캐셔는 흑인이 차지하고 있다. 나와 친구에게 그림을 그려줄 테니 돈을 달라고 소리치던 길거리의 화가 역시 흑인이었다. 내가 영양제를 고르고 있는데 옆에 불쑥 나타난, 냄새가 나며 허름한 노숙자 역시 흑인이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캐셔들, 묘하게 나를 무시하는 게 매번 느껴진다. 나는 영어를 의사소통에 무리 없이 구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뒤의 백인 손님을 대하는 것과 태도가 미세하게 다르다. 예전에 인터넷을 발칵 뒤집었던 스타벅스 파트너의 인종차별 사건과 같이 직접적이거나 미개한 형태는 아니지만, 흘겨보는 눈빛이나 돈을 툭 던지는 듯 한 태도에서 나는 일주일동안 불쾌감을 꽤나 자주 느꼈다. 이러한 나의 묘한 ‘불편함’이 정점을 달한 것은 조원들과 함께 조지타운의 피자집에 방문했을 때였다. 놀랍게도 우리가 시킨 피자는 1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손님이 많아서 그러려니 하고 대화에 집중하느라 그렇게 된 줄도 몰랐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종업원을 불렀다. 뭔가 횡설수설하던 종업원, 누가 봐도 실수 같지가 않았다. 내 과한 추측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영어를 잘 못 해서 컴플레인을 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우리가 아무 말 안 하고 있을 때 1시간동안 나오지 않던 음식은 영어로 따지자마자 10분도 안 되어서 나왔다. 그리고 그 종업원은 흑인이었다. 

흑인들은 아직도 백인 건물주의 건물에서 경비나, 마트 캐셔, 식당 종업원 등으로 일한다. 소위 경제, 정치적인 주류의 영역은 아직까지 백인이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흑인들은 우리와 같은 동양인을 묘하게 깔보고, 무시한다. 이것이 미국이 그토록 부르짖는 one nation인가? diversity인가? 아니면 freedom?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녔을 때, 절대로 대놓고는 아니지만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때의 나는 영어에 매우 미숙했기에, 애써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흘러 워싱턴에 온 지금, 내가 겪은 감정은 그때와 많이 다르지 않다. 우리는 흔히 차별이란 폭력적이고 직접적인 형태라고 인식하기가 쉽다. 제3자가 봐도, 즉 누가 봐도 차별처럼 느껴지는 상황만을 진정한 차별이라고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차별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주체는 가해자도, 제3자도 아닌 오직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당하는 입장에서 그것이 차별이라고 인식한다면 그 형태나 정도에 상관없이 차별이다. 

출국 전 날 주어진 짧은 자유 시간에 National Gallery을 다 둘러보고 조금 여유가 생겨 친구와 아쉬운 마음에 National Mall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African-American Museum에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 출입구 쪽을 기웃거리는데 문득 첫 날에는 보지 못 했던 것이 보였다. 엄청나게 긴 대기 줄의 방문객이 전부 흑인들이었던 것이다. 인종 간의 균열과 갈등의 종식, 혹은 unity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박물관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비주류(비록 더 다수라고 할지라도, 권력의 차원에서 논의하자면)의 전시를 주류를 포함한 모두가 아닌 비주류 자신들만 관람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변화라고 볼 수 있을까? 그저 갈등의 표면적인 봉합만 가지고 너무 설레발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환멸이 가득한 비난조로 글을 쓴 것 같지만, 일주일동안 워싱턴 현장교육은 나에게 매우 값진 경험이었음을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예전에는 새로운 경험, 특히나 여행을 갔다 오면 좋은 점만 찾아보려고 애쓰곤 했다. 그래야만 내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4년 간 관악에서 학문을 배우며, 또 일주일동안 다양한 전공의 학우들의 이야기를 세미나 등을 통해서 들으며, 세상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가지는 것이 어쩌면 진정으로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견학은, 외부가 나에게 주입하는 메시지 그 이면에 담긴 실체를 나름대로 스스로 파악하고자 하는 여정이었다는 점에서 아주 커다란 가치가 있었다. 정말로 오롯하게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한제국의 소녀, 옥련이의 눈에는 마냥 신기하고 대단한 ‘별천지’로만 보였던 화성돈이었다면 대한민국의 여대생, 나의 눈에는 별천지 뒤에 숨겨진 어두움이 조금 더 부각되었다. 그러나 옥련이가 화성돈에서의 유학을 토대로 성장하고 지식인으로서의 소양을 쌓아갔던 것처럼, 나 역시 이번 워싱턴 견학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하고 시야가 넓어졌다는 점만큼은 동일하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값진 기회를 주신 CORE 사업단 측, 교수님과 조교님들, 그리고 언제나 신선한 아이디어와 깊은 지식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우리 관악의 학우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List

수정요청

현재 페이지에 대한 의견이나 수정요청을 관리자에게 보내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빈 칸에 내용을 간단히 작성해주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