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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우수수기:최우수상] 철학과 코어학사 김현서 (고전문헌학 연계전공) <나의 『오뒷세이아』: 고전학 연구자의 길을 택하기까지의 여정>
  • Category코어단상
  • Writer인문대학
  • Date2018-12-03 10:42:59
  • Pageview418

2018.11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 19개교 참여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호메로스를 만나다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 수많은 행운을 만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오뒷세이아』를 읽은 게 시작이었다. 호메로스 서사시의 내용보다 그 이야기가 삼천 년도 더 됐다는 사실이 나를 사로잡았다. 수천 년 전의 텍스트를 읽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내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을 뿐 아니라 시들지 않는 명성을 택하겠다는 서사시 속 영웅의 말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았다. 내가 살아왔으며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비하면 영원히 존재해 온 무언가에 내게 주어진 시간을 쏟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호메로스 서사시가 운율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 이 단어는 무엇의 번역이라는 말을 주워듣던 나는 희랍어를 공부해 언젠가는 호메로스 서사시를 희랍어로 읽겠다는 결심을 하고야 말았다. 그 순간 이후로, 나는 한국에서 서양고전학이 생소하며 협소하고 열악한 분과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수한 도움을 받으며 공부해 왔다.

물론, 정규 교육과정에서 희랍어를 배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서양 고전을 연구하는 정암학당에서는 여름마다 무료 희랍어 강좌를 열었고,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기초 희랍어 문법 수업에 참여했다. 내가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수업에 나오기만 해도 기특해 하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부담이 아닌 격려와 함께 고전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철학과 진학 후에는 한 선생님께서 내가 희랍어를 공부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신 덕에 대학원생 고전어 공부 모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언어 공부를 꾸준히 하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만나고 싶었던 내게 공부 모임은 반갑고도 소중했다. 대학에 입학한 첫 해 여름 함께 공부를 했던 학생들은 나의 선생님이자 선배이자 동료가 되었다. 작년에 한 선생님께서는 호메로스를 읽겠다고 희랍어를 배웠으나 고대철학 텍스트만 읽어 왔던 나와 기꺼이 한 학기 동안 『일리아스 』를 함께 읽어 주기도 하셨다.

 

고전문헌학 연계전공이 개설되다

내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여러 사람과의 만남에 더해, 내가 누린 또 다른 행운은 고전문헌학 연계전공의 개설이었다. 내가 대학에 진학하던 마침 코어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대학교 학부에 고전문헌학 연계전공이 신설된 것이다. 호메로스 서사시를 공부하고 싶었으나, 그리스 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학부가 없어 철학과에 진학한 내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철학과에 진학하여 고대 사유를 이루는 토대인 고대철학을 공부하고, 고대철학 공부를 통해 희랍어 또한 꾸준히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본격적인 고전학 공부는 학부를 졸업한 후에 시작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으나, 코어 사업은 내게 고전 문학과 고전어를 학부에서 공부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철학 공부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코어 사업이 아니었더라면 대학원 수업을 수강해야 했을지 모르는데, 다행히도 나는 학부에서 적절한 수준의 고전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코어 사업 덕에 학부 정규 강의로 개설된 고전어 강독 수업, [그리스고전강독]과 [라틴고전강독]은 나를 위한 맞춤 수업 같았다. 대학원 강독 수업에서는 고전어 습득보다는 텍스트의 내용에 관한 논의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일정 수준의 고전어 능력을 이미 검증받은 학생들이 대부분인 환경에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문법 사항 점검을 소홀히 하기 쉽다. 그러나 애당초 언어 공부를 목표로 하고, 다양한 수준의 고전어 능력을 갖춘 학생들이 수강하는 학부 강독 수업에서는 건너뛰기 쉬운 문법 사항을 재차 확인하는 일이 중요했다. 학부 강독 수업은 문법 사항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였을 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고전어 텍스트를 접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구체적인 주제가 있는 대학원 강독 수업은 하나의 텍스트를 완독하는 일을 목표로 하는 반면, 학부 강독 수업에서는 여러 종류의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었다. 정규 수업 밖에서 고전어 공부를 계속해 오던 내게 시험을 보고 성적을 받는 일은 공부를 위한 좋은 자극이기도 했다.

전공이 생겨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는데 학업지원금까지 받게 됐다. 지난 학기부터 나는 매달 적지 않은 금액의 학업지원금을 받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한 달 벌어 한 달 쓰던 내게 학업지원금은 여유를 주었다. 원하는 물건을 아무 때나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마련해 줬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지난 학기에 국가장학금 신청 기간을 놓쳐 등록금을 먼저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아껴 모아두었던 학업지원금이 없었더라면 등록기간을 놓칠 뻔하였다. ‘학업’지원금이니만큼 허투루 써 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오히려 소비에 조심스러워지고, 미래의 공부를 위한 저축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학업지원금은 내게 닥칠지도 모르는 일들에 대비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으며,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든든한 지원이 되리라 믿는다. 약간의 금전적인 여유가 내게 준 긍정적인 영향을 계속해서 서술할 수도 있겠지만, 코어 사업단에 내가 진 가장 큰 빚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 바라보게 해 주었다는 사실을 가장 적어두고 싶다.

 

기로에서 스코틀랜드로 떠나다

고등학교 때 평생 호메로스를 공부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이후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업을 계속하겠다는 결심은 흔들린 적 없으나, 졸업이 가까워지니 어떤 과 대학원에 가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주어진 길은 내게 둘로 보였다. 나는 철학과 대학원에서 고대철학 공부를 하며 호메로스 공부를 병행하거나,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호메로스를 비롯한 그리스 문학을 공부할 수 있다. 누군가는 내게 고등학교 때부터 서사시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면서 왜 철학과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좋아하는 호메로스 공부는 전공과 무관하게 계속하리라는 확신이 있었으나, 정작 내게 부족한 철학 공부는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동시에 정말 좋아하는 공부가 아니라면 내가 열심히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했으나, 고전학을 공부하여 내가 공부한 것을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현실적인 걱정이 앞섰다.

어떤 과 대학원에 진학할지 고민하며 지난 학기를 보냈다. 만나는 사람에게 고민을 전하고 조언을 구해 봤다. 한 선생님께서는 내게 원하는 공부를 하라고 응원해 주고 싶으나, 고전학 학부가 없는 대한민국의 대학 환경에서 도저히 고전학을 전공하라고 권할 수 없다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반면 내가 당연히 서양고전학을 전공하리라 생각하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더 고민해도 좋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동료 학생들도 의견이 갈리긴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은 고전학이 멋있으니 전공하라고 농담을 섞어 말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고전학이 가치 있는 공부라고 생각한다며 격려를 보냈고, 또 다른 사람은 철학과에 가도 고전학과에서 하는 공부를 다 할 수 있다며 철학과 진학을 권유했다. 현실적으로 고전학과 진학을 추천하기 어렵다는 선생님의 말이 뇌리에 박혔던 탓에 철학과 진학을 반 결심한 상태였다.

고민을 계속하던 중, 코어 멘토로부터 코어 사업단에서 참가 경비를 지원받아 해외 학술대회에 참가해 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발표를 하지 않는 학생도 학회 참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신청 절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꼭 다녀오라는 말에 즉시 여름에 개최되는 학회 검색을 시작했으며,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켈트 고전학회(Celtic Conference in Classics)를 발견했다. 다른 학회들은 대부분 학기 중에 열렸으나 켈트 고전학회는 여름방학 중인 7월 중순에 열렸다. 뿐만 아니라 학회가 열리는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에서는 나흘간 숙식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저명한 호메로스 윤리학자 더글라스 케언스가 개최자이기까지 했다. 모아 두었던 코어 학업지원금으로 학회 참가비를 내고, 숙소를 잡고, 비행기 표를 끊었다. 참가 후에 경비를 환급받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학업지원금이 없었다면 신청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학기가 끝나자 나는 코어 사업단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부푼 기대를 안고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세계의 고전학자들을 만나다

나흘간 고전학 공부를 실컷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신이 가득 나 있었다. 학회 일정표는 눈을 끄는 제목으로 가득했다: “캡틴 아메리카는 21세기의 헥토르인가?”; “아킬레우스의 방패의 시각화”; “게이트키핑: 고전학계 진입 장벽 낮추기”; “메트리컬 트메시스metrical tmesis는 존재하는가?” 쉽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고전 재해석 관련 발표에도 관심이 갔지만, 나를 고전학회에 오게 만든 호메로스 발표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서양 학계 내 고전학의 상황에 관한 관심 또한 지대했기 때문에 고전학의 대중화를 다루는 패널에도 참가하고 싶었다. 연계전공 개설로 인해 생긴 [고전문헌학입문] 수업으로 문헌학에도 관심이 생겨 필사본 연구에 관한 발표도 듣고 싶었다.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발표문 목록을 보며 고전학이 단순히 고전 문학 해석과 비평으로 한정되지 않는 분야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고전학 연구자가 적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학술대회 일정이었다.

켈트 고전학회는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다. 나흘간 14개의 패널마다 하루에 평균적으로 7명의 연구자들이 발표를 했으며, 하루의 끝에는 대강당에서 열리는 큰 발표가 하나씩 있었다. 각 패널은 주제를 정하고 발표자를 모집한 두 명의 주최자에 의해 진행됐다. 패널의 주제는 그리스와 로마를 고루 아울렀으며, 문학과 역사뿐 아니라 국내 학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금석학이나 문헌학 관련 주제를 다루는 패널 또한 찾아볼 수 있었다. 한 공간에서 학회의 모든 발표가 이루어지며 하루면 마무리되는 국내 학회에만 참가해 봤던 내게 켈트 고전학회의 패널 시스템은 신선했다. 학회 측에서는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패널 간 이동을 적극 권장했으나, 정작 주최자들은 발표자 모두가 학회 기간 내내 패널에 머물러 분과 내 토론을 진행하길 바랐다. 내겐 어떤 쪽이든 좋아 보였다. 단순 참가자일 뿐이었던 나는 관심 가는 발표를 들으러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학회장은 시끌벅적한데 아는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자 걱정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의 고전학자를 만나보고 또 대규모의 고전학회에 참가하길 간절히 원했으나 처음 와 본 나라에서 학부생 참가자 신분으로 혼자 학회에 온 건 무모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었다. 한껏 긴장한 상태였는데 참가한 첫 [풍경] 패널에서는 발표자도 아닌 단순 참가자에게까지 자기소개를 시키는 게 아닌가! 심지어 짝을 지어 서로를 소개하게 만들었다. 비극을 연구하는 이탈리아 출신 교수를 소개했고, 미국인 대학원생이 내 소개를 맡았다. 그가 결국 내 한국어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나는 스스로 소개했다. 고전학을 공부하는 학부생이며, 해외 학술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이 학회를 택했다고 말했다. 모두 멀리서 왔다며 나를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다. 참가자 모두가 서로와 적극적으로 대화하길 바라는 상황이었기에, 사람들과 대화하기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모든 발표가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지만 내게는 연구자 간 적극적인 대화를 가능케 하는 학회의 운영 방침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학회는 확실히 연구자 간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대학원생부터 교수까지 발표자들은 다양한 연령이었으며, 발표의 전문성이나 완성도 또한 천차만별이었다. 완결된 형태의 논문을 발표하는 일이 학회의 목적은 아니었다. 주제별 패널이 꾸려져 있었으니, 켈트 고전학회는 세부적인 분과 내 연구자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학문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었다. 국내 학회에서와는 달리 질문을 던지기 전에 이름과 소속을 밝히라는 요구가 없으니 누구든 자유롭게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내게 학회는 항상 자신의 성과를 발표하고 평가를 받는 장이었으나, 더 이상은 아니었다. 학회 또한 학습의 연장선상에 있는 활동으로 보였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거나 나의 능력이 수준 미달이라 발표를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걱정스러운 마음은 사라지고, 마지막 날의 나는 언젠가는 발표자로 참여하고 싶은 마음과 언젠가 발표하고야 말겠다는 포부로 가득 차 있었다. 나흘간 오로지 고전학 공부만 하는 일이 너무나도 즐거웠던 탓인지 대학원 진학에 대한 고민에도 끝이 보이는 듯했다. 돌이켜 보면, 항상 철학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분야는 고전학이었다. 수업에서 요구하는 바 이상으로 혼자 참고문헌을 찾아보고, 연구 동향을 살피는 분야는 늘 고전학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고전학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세인트 앤드류스를 떠나며 나는 헌책방에 들렀다. 이미 여럿의 학회 참가자가 여럿 들렀기 때문이었는지 헌책방 주인은 내게 고전학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확신에 찬 상태로 스코틀랜드를 떠날 수 있었다.

 

고전학 연구자의 길을 택하다

나는 고전학 공부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코어 사업이 내게 선사한 행운은 내가 무엇보다도 고전학 공부를 가장 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을 계속해도 좋다는 용기를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며 내가 얼마나 많은 행운을 누려 왔는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고전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고,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필요한 수업을 들으며 장학금까지 받았고, 평생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해외 학술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 직접 발표를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얻었다. 코어 사업 전체를 통틀어 아마 내가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학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내 학업 역량과 생활, 견문과 진로 결정 등 다방면에서 도움을 받았다.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해 온 만큼 많은 기대도 받아 왔다. 처음 들어간 희랍어 문법 수업에서 만난 몇 분은 문장을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하는 내게 대한민국 고전학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듯 말씀하셨다. 한편으로는 별다른 노력 없이 받은 칭찬에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리적으로 부담도 되었다. 철학과 대학원에 가기 전에 고전학과 대학원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한 선생님의 농담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강독에 참여할 때마다 어렸을 때부터 고전어를 공부했다는데 저것밖에 못하냐는 얘기를 들을까 항상 긴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사람의 관심과 지지를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 받은 도움을 되새길수록 공부를 계속하며 내가 누려 왔던 행운을 되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코어 사업을 통해 내가 받은 무수히 많은 도움과, 내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확신은 나 또한 도움을 돌려주어야겠다는 결심의 이유가 됐다. 나는 운이 좋아 고전학에 관심을 가졌던 고등학생 때부터 학부에서 고전학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행운을 누려왔으나, 나 이후에도 고전학을 하고 싶어하는 누군가에게 이런 행운이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단순히 번역되지 않은 텍스트가 많고, 고고학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고전학 연구가 적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내게 도움을 주신 여러 선생님께서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계시지만, 한국의 대학에 고전학 학부가 없는 지금 관심이 있는 학생을 가르치기도, 학생이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도 어려움이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누구보다도 많은 도움을 받으며 공부해 온 내가 고전학 공부를 계속하여 모교 학부에서 고전학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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