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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연합 · 연계전공 해외현장교육_항저우] 윤서혜 (철학과/ 동아시아비교인문학)
  • 카테고리해외현장학습 소감문
  • 작성자인문대학
  • 날짜2019-02-07 15:12:42
  • 조회수254

 소산국제공항에 도착해 첫 행선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본 항주는 여느 대도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창가마다 널린 빨래들이 옹기종기 소소한 일상감을 자아내고는 있었지만,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마천루들이 저마다의 위용을 뽐내 왔던 것이다. 경항대운하의 유람선을 타는 동안 강가 가까이에 드문드문 중국풍의 가게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시야를 가로채는 것은 그 뒤의 회색의 배경들이었다. 흔히 서울을 전통과 도시가 조화된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일상에서는 현대식 건물들과만 관계하기 십상인 것을 자연히 생각하게 되었다. 건물들의 벽면을 타고 흐르는 불빛들과 까마득한 검은 강을 전망하고 인사동과 유사한 항주의 거리인 하방가와 남송어가를 지나며 정취가 장소에 머물 조건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러한 장소를 생각할 때 쉽게 떠오르는 도시인 교토처럼 장소의 외양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전통 보존과 개발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은 어느 정도 이러한 고려로부터 오는 것이리라.

 종종 문화재 날림 복원을 취재한 기사들이 나온다. 비단 동아시아 삼국만이 아닌 세계의 많은 나라가 이러한 문제를 겪는다. 문화 유산이 관광 상품으로 소비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적당주의가 이러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주장 또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원래의 유적과는 영 동떨어진 새 건물을 유실된 터 위에 짓고는 그것을 문화 유산으로서 전시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방식이 비판을 받는 데에는 물론 적절한 이유가 존재한다. 실재했던 것에 대한 왜곡의 우려는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저것은 “진짜”가 아니라서 의미가 없어’라는 식의 생각에서 중시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유구한 세월을 전해져 내려오는 옛 작품들이나 비교적 최근의 창작물들로부터 얻은 인상과 그 특정한 장소로부터 전해 받은 느낌이 다르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것에서 오는 즐거움과 저것에서 오는 즐거움은 하나의 소재를 계기로 엮여 있는 서로 다른 것일 테니 말이다. 스스로가 서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바라본 풍경 또한 스스로의 이해로부터 또 새로운 전체의 일부로서 의미를 가질 테다.

 허선과 뱀 여자의 사랑 이야기의 비극적 결말의 장소인 뇌봉탑은 무너진 채로 그 잔해가 녹색의 건실한 탑 안에 들어 있는 형태로 전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상상력의 산물인 것으로 여겨지는 전설을 실제 존재하는 어떤 특정한 공간에 매어 붙드는 힘은 백사의 해원을 소망하며 수백 여 년에 걸쳐 탑에 뻗쳐진 손길 하나하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들 가운데 자신의 처지를 백사에 대 보는 이들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특정한 장소를 부러 찾아가는 행위는 연결과 새로운 자기 이해에 대한 욕구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어떤 장소의 장소성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여행의 이점으로는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두루뭉술한 이미지가 비교적 날것으로 전환된다는 것이 있다. 사실 평소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찾아 다니지 않으면 허선과 백사의 사랑이야기만큼이나 근 백 년 이내의 역사도 또한 여러 구성된 이미지들로서만 뇌리에 남기 쉽다. 좋은 세계 기행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각종 영상물들이나 기록 자료들에 접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자기의 몸을 그 공간 안에 넣어 보는 것만큼의 체험을 아직 기술이 제공해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수백 평 저택에 사는 사람이 대학가의 원룸이나 고시원 안에 직접 몸을 넣어 보고서야 경악하는 것과도 약간은 설명의 맥이 닿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은 그 안의 생활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는 선에서야 작동할 수 있는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과거의 어떠한 크고 작은 어떤 일들도 또한 먼지 같은 일상들 간의 교차지점에서 찾아진다는 것을 성큼 인식하게 되는 순간은 그처럼 켜켜이 쌓인 일상이 쉽게 와 닿는 장소에서 오는 것 같다. 그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단지 책이나 영상물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직접 바로 그 곳에 가 보기를 추천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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