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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하계 연합 · 연계전공 해외현장교육_워싱턴D.C.] 공민우(서양사학과)
  • 카테고리해외현장학습 소감문
  • 작성자인문대학
  • 날짜2018-12-18 18:30:07
  • 조회수305

미국의 명암을 직접 들여다 보다


 이탈리아의 석학 아리기(Arrighi)는 자신의 저서 “장기 20세기”에서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헤게모니 이동을 분석하며 191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미국이 명백한 헤게모니의 중심부임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실이다. 미국은 군사적으로도 단연 무적의 세계 최강대국이겠지만 그 근원적인 힘은 상업, 산업, 금융 모두를 아우르는 경제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허나 미국의 힘에 대한 바람직한 분석은 그보다 한 발짝 더 나가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갖는 정당성과 가치, 그리고 그러한 것을 법제화시킨 제도는 미국의 힘이 정치경제적인 하드파워(hard power)로는 축약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함을 시사한다. 요컨대, 현대 세계에서 미국이 갖는 헤게모니는 대외적으로 국제정치 및 국제경제의 가시적인 힘과 부는 물론, 그들이 건축해왔고 또 자부하는 근대 문명에 대한 자부심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워싱턴 D.C.로의 해외현장교육은 더욱이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우리는 미국의 국제적인 힘과 국내적인 질서 모두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이 국제 정치경제 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로서 보이는 면모를 관찰하는 것은 다양한 기관을 방문하며 가능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세계은행(World Bank)이다. 왜냐하면,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통해 전(全) 인류의 진보를 추구한다는 보편주의적 정당성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부여함으로써 주변부의 자발적인 동의하에 세계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선의(善意)와 함께 이 질서는 중심부가 주변부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제국주의적 질서가 아니라 주변부에게도 득 볼 것이 많은 호혜적 관계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세계은행의 전시관과 그것이 진행하는 사업에 관한 개괄적 설명은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국제적 지배종속 관계와 완전히 같은 것으로 치부하는 한편 자유주의적 가치를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하는 관점과는 달리, 실제로 자유주의 질서가 빈곤의 퇴치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경제개발을 넘어 개도국의 정치적, 문화적 억압을 ‘계몽’하는 것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계은행과 함께 제 3세계는 실제로 물질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상당한 진보를 성취하고 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에 방문한 것 또한 미국의 자유주의적 사회풍토를 잘 관찰할 수 있는 계기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국 사회에선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 ‘싱크탱크’기 때문이다. 싱크탱크는 현실적인 타결책이 절실한 문제를 다루는 데에 상아탑의 지나치게 이론적인 접근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연구소의 일종으로, 그중에서도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미국이 세계적 패권을 쥐어 잡은 1960년대부터 주로 대학에서 연구하던 지식인과 정부에서 실무를 담당하던 요원들이 모여 미국의 대외정책을 모색하는 곳이다. 따라서 그것은 국가의 이해와 통제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운 까닭에 현재의 정세에 대한 가감 없는 분석을 제기하기로, 그리하여 미국 대외정책의 보고로 명성이 높다. 한국에도 싱크탱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있어도 있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싱크탱크란 정부가 미국과 같은 체제를 뒤쫓아가기 위해 성급히 만든 것이다 보니 미국의 싱크탱크가 자랑하는 국가로부터의 독립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국의 싱크탱크가 시민사회에서 국가를 바라보는 셈이라면 한국의 싱크탱크는 그걸 뒤집은 셈이다. 이처럼, 한국에 그럴싸한 싱크탱크가 부재하는 것에 비판적이던 나에게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를 방문하는 것은 다시 한 번 독립적인 지식기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였다. 대외정책의 기반이 시민사회에 있는 덕택에 선거 몇 번에 중장기적 국가전략이 전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미국의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에 지대하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이처럼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미국이 빛나는 면의 저편에는 미국의 자유주의가 품는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종과 계급에 따른 분명한 구분선이다. 혹자에게 이는 낯선 이야기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투영되는 미국의 역사란 자유를 위해 독립혁명을 일으킨 자유로운 시민들이 근대 최초로 자유민주주의 성문 헌법을 만들고, 그렇게 탄생한 정초된 시민권이 점차 다양한 집단들에게 확대되며 마침내 다양한 집단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국인들과 많은 보수 역사가들은 제 역사를 ‘합의의 역사’로 여기며 미국이 큰 갈등 없이 진보해온 자유주의 국가임을 자부한다. 미국역사박물관(American History Museum)이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주관람관에 미국인들이 미국혁명을 통해 ‘단일한 국민(one nation)’로 거듭났다고, 그렇게 미국이 평화로운 진보를 거듭해왔다고 홍보한 것도 바로 그러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 시민권과 인간의 권리가 확대되어온 과정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것은 차라리 갈등으로 점철된 과정이었다. 1820년대에 미국에서 명사 정치의 자리에 대중정치가 들어서고 나서도, 진보사학계가 최근 들어 강력히 주장하듯, 미국의 엘리트들은 대중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제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지 않았던가. 1865년 남북전쟁이 북부 군의 승리로 끝난 후에도, 노예해방이 명명백백하게 천명되었음에도, 백인들은 짐크로우(Jim Crow) 체제를 만들고 사적 폭력(lynch)을 행사함으로써 흑인들의 투표권행사를 저지하였다. 1960년대에 가서야 비로소 그 법적인 ‘합의’는 실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유구한 투쟁의 역사는 결코 ‘미국역사’박물관에 전시되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미국흑인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과 아메리칸인디언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은 미국이 표방하는 자유주의의 저 너머에 있는 인디언 토벌과 인종해방 갈등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2018학년도 여름 워싱턴D.C. 해외현장교육에 참여하면서 미국의 패권이 지니는 명과 암 모두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코어사업단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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