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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우수수기:장려상] 철학과 코어석사 홍순아(고전문헌학 연계전공) <학자로서 자신의 무대를 설정하기>
  • 카테고리코어단상
  • 작성자인문대학
  • 날짜2018-12-03 10:41:49
  • 조회수322

2018.11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 19개교 참여수기 공모전 장려상 수상작입니다.

내가 연구자로서의 꿈을 꾸고 그 길을 걷는 데에 있어 코어 사업만큼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없다. 예비 학자이자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무대를 설정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그 무대를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면, ‘무엇’과 ‘어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신의 세부전공과 자신이 배우고 연구하고 싶은 곳. 코어 사업은 나의 무대를 서양고대철학, 그 중에서도 플라톤 연구를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연구해보겠다는 꿈을 심어주었다. 서양의 철학, 그 중에서도 서양철학의 원류를 동양에서 한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 매우 이상하고, 때문에 나도 그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일이지만 코어 사업의 도움을 통해 나의 무대가 이러하기를 꿈꾸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2016년도부터 시작된 코어사업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었는데 이 글은 그에 대한 기록이다.

 

나 자신을 탐구하는 시간과 체력이 생기다: 코어 학업지원금

코어사업이 시작된 2016년 무렵 나는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매일 3시간이 넘는 통학시간, 그리고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있는 과외 아르바이트. 학업 외의 일로 소모되는 시간과 체력은 공부 시간을 속절없이 갉아먹었지만 그렇다고 과외를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의 생계도 문제였고, 미래의 생계도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안정성이 없는 일자리이기 때문에 그만둔다면 언제 또 구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고, 언제부터 얼마동안이나 수입이 없을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연구자가 되는 것은 평생의 바람이었지만, 당장의 생계 문제에 점점 잊히는 듯 했다.

그러던 와중에 코어 사업이 시행되고 그 일환으로 학업 지원금이 지급된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간절하게 이 사업에 선발되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학업 지원금의 수혜자로 선정되었을 때의 감격과 감사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연구자로서의 꿈부터 당장의 학업까지 빛이 바래지고 있을 때, 열정도 의지도 가물어갔을 때 학업 지원금은 내게 단비와 같았다. 코어 사업이 나에게 학업을 계속 해나가라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더불어 학업지원금 덕분에 생긴 시간과 체력은 나의 목표를 확고하게 해주었다. 나는 연구자로서의 꿈을 매우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었지만 세부적인 분야를 정하는 것은 꽤 늦게까지도 고민거리였다. 내 관심분야가 동양철학부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플라톤, 칸트, 베르그손, 비트겐슈타인까지 너무 다양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시간을 갖고 찬찬히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니 나는 철학사, 그 중에서도 텍스트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을 좋아했고, 새로운 관점의 질문을 던지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철학의 패러다임을 구성한 플라톤을 전공하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했다. 또 플라톤을 가장 독특하게 읽은 학자이자, 베르그손 철학에서 내가 느낀 매력을 플라톤 철학과 종합한 박홍규의 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희랍어 장벽 앞에 주어진 사다리: 연계전공 고전문헌학

때문에 서양고대철학을 전공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고대 그리스어였다. 희랍어 공부 방식은 보통 문법을 한 번 본 이후에 바로 텍스트 독해에 진입하는데, 희랍어 강독은 고전학과의 대학원 수업뿐이었고, 그나마도 문학 작품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문법만 한 번 보고 바로 실전으로 넘어가는 것은 꽤나 큰 부담이었던 와중에 사다리를 주어 단계 별로 실력을 향상시킬 기회를 준 것이 바로 코어 사업에서 신설한 연계전공 <고전문헌학>이다. [그리스어 문법 및 작문], [그리스고전강독1] 등의 강좌에서 플라톤의 희랍어뿐만이 아니라 투키디데스, 크세노폰의 저작을 발췌해 읽으며 희랍어에 대한 이해를 다각도로 심화시킬 수 있었다. 플라톤의 희랍어에만 익숙해지면, 플라톤이 언어사용을 독특하게 함으로써 얻고자 했던 효과를 느끼지 못할 수 있는데, 다양한 저작을 아우르면서 언어적 느낌을 체득해 나갈 수 있었다.

[고전번역연습2]의 경우에는 참고문헌을 찾는 법부터 프로포절 쓰는 법 등 희랍어뿐만이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또 다른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무엇보다도 매우 좋은 주제를 발견한 줄 알았지만 사실은 꽝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보는 것도 매우 재미있는 일이었다. 인문학 연구자에게 주제는 연구의 팔 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주제를 잡아보고 실패도 해보고, 실패라는 것을 빨리 깨닫고 다른 주제를 찾아보는 것 또한 귀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번역비평을 수행하면서 영어 번역본과 불어 번역본 등을 찾아보며 텍스트 이해와 번역의 긴밀한 관계를 느끼기도 하고, 글자를 있는 대로 읽는 것과 내용 이해 속에서 글을 읽을 때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나의 학술대회 첫 발표: 코어 학술대회

이처럼 희랍어와 철학 연구가 일상이 되었고, 그러던 차에 마침내 졸업을 앞두고 학사 졸업논문을 쓰게 되면서 내 연구를 일차적으로 종합하는 과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논문을 작성하게 된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그 설렘 이후에는 혼자 연구하는 과정의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나 혼자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내 아이디어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마주한 것이 코어 학술대회였다. 나 스스로도 내 연구를 다른 사람에게 발표해보면서 내 이해를 정리할 수 있고, 토론자가 내 연구에 대해 논평해주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코어 학술대회는 발표자와 다른 전공을 가진 토론자가 발표에 대해 논평하는데, 나와 다른 전공의 토론자에게 내 연구의 필요성을 공감하게끔 하고, 내 연구가 흥미로운 것이게끔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보다보니,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이해를 심화할 수 있었고, 또한 내 아이디어를 보다 단단하게 보완할 수 있었다.

위해서 말했듯이 나는 박홍규 철학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학부 졸업논문은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의 물질론에 대해 발표했는데, 베르그손 형이상학의 독특한 출발점, 관념론과 실재론 모두 잊은 채로 내 눈 앞에 있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양한 청중 앞에서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짜릿한 일이었다. 그리고 수준 높은 논평 덕분에 학회 발표문을 더 발전시켜 졸업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학계에 눈을 뜨다: 코어 중국 현장학습 및 코어 해외학술대회

이처럼 희랍어와 서양철학 모두 서양의 것이기 때문에 나의 관심사는 나날이 서양 그리고 고대에 집중되어 갔는데, 오늘날 그리고 동양에 눈을 뜨게 해준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코어 중국 현장학습과 코어 해외학술대회 지원을 받아 참가하게 된 ENOJP(European Network of Japanese Philosophy) Conference였다.

학자의 강연도 듣고 이러저러한 탐방을 한다는 말을 듣고 참가하게 된 코어 중국 현장학습은 동양권 학계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된 시간이었다. 특히 원톄쥔 선생님의 독재와 사회주의의 관계,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중국에 관한 강연은 너무나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에게 충격적이었는데,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중국 학계의 수준이었다. 중국 학계는 질적인 부분보다 양적인 부분에 집중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원톄쥔 선생님의 관점의 참신함과 깊이는 놀라울 정도였다. 특히 서구식 현대화 모델에 내재된 모순과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미국 및 서구 열강들이 어떻게 강요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경제지표를 GDP라는 지표를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한 나라의 경제규모에 대한 이해를 자본이 집적된 정도로 이해하는 것, 즉 세계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느냐가 실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 경험에 뒤이어, 해외 학회 경험 차 참석하게 된 ENOJP Conference는 일본 철학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파리에서 열린 ENOJP Conference에서 나는 일본 철학을 서양의 학자들 또한 관심 있게 연구하고 있으며 일본 철학이 동양 특유의 가치관을 선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을 독립적인 실체보다는 관계 의존적으로 이해하는 것 등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기존의 서양철학이 이미 모든 것을 다 말한 것 같은데도 일본철학은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일본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한국은 한국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는데, 일본은 일본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는 것도 놀랍고 부러웠다.

이러한 값진 경험으로부터 나는 중국의 학계가 이처럼 무서울 정도로 발전했으며, 또한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면 내가 학자로서 활동할 무대가 꼭 서양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평가되어 있는 동양권 학계에 대한 평가 재고의 필요성 그리고 미국이 가지고 있는 학계의 패권과 방향성 또한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 생각이 내 마음속에 싹트게 되었다.

 

동경대학 유학을 결심하다: 동경대학 해외 현장학습

이 생각에 쐐기를 박아준 것이 바로 동경대학 해외 현장학습이다. 동양권 학계에 관심이 생긴 이후 여러 학자와 대학을 찾아봤는데, 동경대학의 노토미 선생님이 플라톤 철학자로서 매우 저명하며 나와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교수님께서 자신의 논문과 책을 내 집으로 우송해주셨는데 그것을 계기로 동경대학에 한 번 청강을 해볼 기회가 생겼다. 일본의 대학은 한국보다 1개월 늦게 학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종강 후 약 3주 정도 수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도 코어 사업의 도움을 받았다. 코어 해외 현장학습에 지원해보라는 조언에 따라 혹시 몰라 지원해본 것에 코어 사업 덕분에 3주 동안 수업을 듣고 생활하는 데에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동경대학에서 보낸 3주는 나에게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내가 석사 첫 학기에 쓴 기말 페이퍼를 세미나 시간에 발표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덕분에 릿쿄 대학의 다른 교수님과 여러 대학원생 앞에서 발표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본어로 짧게 논문을 요약해보고, 영어로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면 이런 상황이 펼쳐지겠다고 예상해볼 수 있었다. 여러 호평도 감사했지만 필자 스스로도 취약한 부분이라고 생각한 곳에 집중적으로 질문이 쏟아졌는데 서로 다른 해석도 흥미로웠고,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디펜스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도 무척 즐거웠다.

무엇보다도 플라톤 철학과 베르그손 철학의 독특한 종합인 박홍규 철학을 전공하는 데에 있어 동경대학 유학이 가장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플라톤 철학은 미국으로 유학을 많이 가지만, 미국은 플라톤의 텍스트를 분석철학적 기조로 대한다는 점에서 유럽 철학계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그렇다고 프랑스에서는 철학교수가 워낙 대중적인 스타로서 강연을 많이 하기 때문에 교수의 지도를 많이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며,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그곳에서 자리를 잡기도 어렵다는 조언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일본은 철학사적 관점에서 플라톤을 연구하고, 프랑스 철학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자리를 잡을 생각이라면 일본에 유학을 오는 것이 매우 좋을 것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또한 해외수학을 함으로써 현재 동경대학교에서 일본사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계신 선배와 만날 기회를 운 좋게 얻게 되었다. 선배의 조언을 들을 때 선배께서 일본사를 전공하신다는 점에서 일본이 갖는 특수한 위치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점이 있었지만, 동경대학에서의 석사생활과 미국유학 또한 고려하고 계신다는 점에서 동경대학 유학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선배의 조언을 듣고 난 후 나는 내가 프랑스 철학을 공부하려고 하는 한, 프랑스 포닥 과정을 위해서는 동경 대학이 더 나을 것이며 프랑스에서 포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서울대 석사-동경대 박사-프랑스 대학에서 포닥’이라는 목표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포닥 과정은 사실 생각도 못해봤던 터라, 그리고 베르그손 철학은 독학으로만 할 생각이었던 터라 선배의 조언이 매우 감사했다. 프랑스에서 포닥을 하게 된다면 커리어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나아가 국제적인 학자가 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직업을 구하려는 과정에서도 현재 아베의 정책 기조와 프랑스 포닥 경험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도 말씀해주셔서 남은 것은 오롯이 나 자신의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와 같이 코어 사업 덕분에 필자는 학자로서의 시야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목표가 확실해지자 현재의 일들에 대한 의미도 보다 확실해졌다. 박홍규 철학을 세계적인 철학으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꿈도 세우게 되었다. 이처럼 코어 사업은 나에게 매우 큰 행운이었다. 학자로서의 꿈이 흐릿해질 때 붙잡아 일으켜 세워주었고, 나의 무대를 설정하는 모든 과정에 코어사업이 있었다. 이와 같은 행운 속에서 남은 것은 이제 오로지 나의 노력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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